하루키를 읽고 가진 엉뚱한 용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대학교 3학년때 접한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에반게리온이라고. 얼마전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이  영화관에서 상영된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이미 98년에 끝난 애니메이션을 15년이나 지나서 다시 영화로 만든다니… 누군가가 사골게리온이라고 비아냥 거리는 말은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얘기하면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마찬가지이다. 처음 하루키를 접한 94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여전히 여행을 떠난다. 또한 그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페이지가 빠져 버린 책처럼  자신들의 분량을 마치고는 이유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곤 한다.(노르웨이의 숲에서 갑자기 돌격대가 사라진 것처럼) 그리고 아직도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등 뒷편에 죽음을 짊어지고 살고 있다. 물론 하루키도 환갑을 훌쩍 넘긴 탓인지 약간은 달라졌다. 태옆 감는 새 이후부터 인지 모르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쉽게 소설을 쓰는 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그의 특징들은 아직도 남아있고 그는 평생 그것을 사골처럼 끓여낼 심산 인 듯 싶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국내도서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 양억관역
출판 : 민음사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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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두 시간에 걸쳐 모두 읽었다. 참 오래간만에 소설책을 한번에 다 읽어낸 것 같다.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왠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읽고 난 느낌이었다. 머리를 때리는 감동은 없어도 세련된 작품을 읽었다는 느낌. 그렇기는 해도 예전처럼 책 모서리를 접어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부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자살이나 죽음에 대한 묘사는 예전과는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졌다. 소설속에서 하이다의 아버지가 만난 미스테리한 재즈피아니스트의 얘기가 그렇다. 그가 묘사한 '티켓'은 일종의 자살 충동을 묘사하는 듯 보이는데, 그는 다른 누군가에게 그 티켓을 건네 주고 싶지 않아서 본인이 그것을 안고 사라지고 싶다고 말한다. 하루키가 대학교 때 경험한 여자 친구의 자살이 그의 반평생 소설 속 테마였 듯이, 누군가의 죽음이라는 강렬한 에너지는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전달되는 모양이다. 최근 들어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자살 충동이 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묘사처럼 그런 티켓이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특히, 아들- 다시 전달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두렵다. 


그래도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혹시 네가 텅 빈 그릇이라 해도 그거면 충분하잖아. 만약에 그렇다 해도 넌 정말 멋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릇이야..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그런 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거야. 그렇게 생각 안 해? 네 말대로라면, 정말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되잖아. 누군가가 저도 모르게 그 안에 뭔가를 넣고 싶어지는, 확실히 호감이 가는 그릇으로."


나이가 30대 후반에서 40으로 가까워져가는데도 아직 내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못했다. 이 책을 선물한 친구도, 그리고 나를 선택한 아내도, 내 그릇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선택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 그릇에 무언가를 담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 문구가 유독 눈에 뜨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데서 오는 자괴감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티켓을 안겨주고 떠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처럼 나는 믿는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리고 내 친구들과 아내가 보았던 것들이 허망하게 어딘가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그것을 잡아야 한다는 것. 하루키를 읽고 삶에 대한 용기를 얻는다니 왠지 엉뚱한 것 같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때 뭔가를 강하게 믿었고, 뭔가를 강하게 믿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가졌어. 그런 마음이 그냥 어딘가로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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